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의병장으로 강원도 원주(原州)·인제(麟蹄)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에 들어와 일제는 헤이그 특사사건을 기화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인 군대까지 해산케 하였다. 이에 민족의 무력이 상실된 것을 통분해 하던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일제에 투쟁하든가, 아니면 기존의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일제에 항전함으로써 의병전쟁을 국민전쟁으로 발전시켜 갔다.
손재규 또한 원주진위대 참위(參尉)로서 일제가 1907년 8월 5일 원주진위대를 강제 해산하려 하자, 민긍호와 함께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군대를 해산하라는 명령에 복종할 수 없다"고 하면서 300여 명의 진위대 병사들을 이끌고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우선 그는 민긍호와 함께 진위대 병사들을 이끌고 원주 우편취급소를 습격하고,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렸고, 이후에는 의진을 소부대 단위로 편성하여 유격전을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해산군인들을 이끌고 원주의 외각 지역인 문막(文幕)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을 벌여 적병 수십 명을 사살하고, 속사포와 탄환 등 병기들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그는 박여성(朴汝成) 의진과 합세하여 강원도 인제읍을 공격하였다. 여기에서 이들 연합의진은 일경들을 소탕하고 읍내를 완전 장악한 뒤, 군청·경무고문분파소 및 그 관사(官舍)를 파괴하는 한편 일진회(一進會) 회원과 우편소 직원 등 부일배들을 처단하였다. 특히 그의 의진은 해산군인들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군율이 엄정함은 물론 전략·전술에 달통하고, 사격술에 능숙하였기 때문에 관동의병부대 가운데 가장 용맹을 떨쳤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8면
- 박은식전서 상권 46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485·577·578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5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