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유인석(柳麟錫) 의진의 후군(後軍) 장수로 충북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894년 일제는 청일전쟁을 계기로 동학농민군을 탄압하면서 한국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시켜 갔다. 그러다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개입으로 말미암아 국제정세가 변화하면서 친일 세력이 약화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일제는 세력만회를 위하여 급기야 1895년 8월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어서 일제는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강행하였다. 이에 유생들과 민중들은 분연히 궐기하여 의병을 일으켜 대항하여 갔다.
홍귀봉 또한 이같은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유인석 의진에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유인석 의병진의 후군 장수(將帥)로 여러 전투에 참가하다가 제천에 회집하여 있었다. 이 때 남한산성 의병진을 함락시킨 참령(參領) 장기렴(張基 )의 관군들이 일본군과 함께 제천으로 이동하여 왔다. 장기렴의 관군이 가흥(佳興)에 도착한 것은 4월 23일의 일이었는데, 그 후 한 달 동안 관군 및 일본군과 의병 사이에 협상이 오간 후 5월 23일부터 대접전이 벌어졌다. 제천의 대회전은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 밤낮없이 4일간 지속되었다. 이사이 강원도 평창군 출신의 의병장 나시운(羅時雲)이 가흥 전투에서 전사하고, 그를 비롯한 후군진의 장수 채동집(蔡東集)·임도봉(林道鳳)은 광동(廣東)에서 독곡(獨谷)으로 들어오는 적들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 순국하였다. 그리하여 독곡전투에서 적을 막다가 장렬하게 전사, 순국한 3인을 후군 삼의사(後軍三義士)라고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41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26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