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전북 고산(高山) 출신으로 1907년 이학현의진(李學鉉義陣)에 소속되어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학현은 충남 공주(公州) 출신으로 1907년부터 1908년까지 충남 논산(論山)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학현은 의병 십여 명을 거느린 의병장으로 화승총을 휴대하고 충남 논산(論山), 은진(恩津), 공주(公州), 전북 고산(高山)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이학현은 그 휘하에 김영환(金永煥) 등을 거느리고, 1907년 음력 11월 21일 충남 연산군 북면 상내리(上內里)에서 군수품을 수집하였고, 같은 달 28일에는 충남 공주군 남면 청소리(靑小里)에서 군수품을 수집하였다. 음력 12월 1일 연산군 북면 신도내(新都內), 음력 12월 19일 연산군 북면 개안점(開安店)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집하였다. 음력 12월 1일 연산군 북면 신도내(新都內), 음력 12월 19일 연산군 북면 개안점(開安店), 음력 12월 22일 은진군 남면 가치곡(加致谷), 동월 25일 사안리(沙安里), 동월 26일 중기리(中基里), 그리고 1908년 정월 19일 은진군 남면 어수리(於數里), 동월 11시 동면 삼박곡(杉朴谷)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현팔봉은 1907년 음력 12월 1일 이학현의진(李學鉉義陣)에 가담하여 13일 동안 동료 의병 20명과 함께 총기 8정을 휴대하고 이학현의 지시에 따라 충남 논산(論山), 은진(恩津), 노성(魯城) 일원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1907년 12월 8일 연산군 인천시장(仁川市場)에서 한삼봉(韓三奉)에게 군자금을받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소위 폭동(暴動) 및 강도죄(强盜罪)로 기소되어 1910년 5월 27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918~919면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全州支部:1910. 5.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