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북 고부(古阜) 사람이다.
1909년 이성화(李成化)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내정을 간섭하였다. 나아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이성화 의병장은 1908년에 전북 고부에서 거의하여 고부, 태인(泰仁), 순창(淳昌), 부안(扶安), 정읍(井邑) 등지에서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신보현(申保玄)의진과 연계하여 1시간 여에 걸쳐 일본군과 교전하였고 6월에는 고부군 우덕면(優德面)에서 일본헌병대를 격퇴하기도 하였다. 1909년 7월에만 일본 경찰, 헌병대, 수비대를 공격한 회수가 무려 26회에 이를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허재홍은 이성화의진에 참여하여 군사들과 함께 전북 일대에서 대일항쟁을 전개하다가 일군에 붙잡혀 1909년 9월 20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637·63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