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2월 하순경 전북 고부군(古阜郡)에서 정일국의진(鄭日國義陣)의 선봉장 김장명(金將明) 등 20명과 함께 군자금 등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북 남원(南原) 출신의 정일국 의병장은 1906년 6월 태인의병(泰仁義兵)이 일어나자 우무사(右武士)로 참여하였다. 태인의병의 패전으로 의진이 해산되자 보부상(褓負商)으로 변장하여 각지를 돌며 시국을 관망하였다. 1907년 7월 전북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사창(社倉)에서 만난 김동신(金東臣) 의병장과 합세하여 내장산(內藏山)ㆍ지리산(智異山)ㆍ덕유산(德裕山)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의진의 규모는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5백 명을 상회했다. 1908년 9월까지 활동하다가 의진의 지휘권을 신보현(申甫鉉) 의병장에게 이양한 후 잠복하여 시세를 살피던 중, 1909년 9월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1909년 음력 2월 하순경 정일국의 선봉장 김장명 등 약 20명과 함께 전북 고부군(古阜郡) 답내면(畓內面) 현동(玄洞)의 민가에 들어가 엽전 20냥 등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같은 해 6~7월경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2년 9월 13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에 의거 1913년 1월 3일 형 집행을 면제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7.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08, 609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5권 752~75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