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최성구는 1908년부터 1910년까지 유종한의진(兪宗煥義陣)에 투신하여 충청,전라,경상도 일대에서 부대장(部隊長)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 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항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즉 동년 8월 해산 군인들의 의병참여는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 계층도 유생,농민,포수,해산군인을 비롯하여 상인,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전면전의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유종환은 1907년 9월 김동신(金東臣)과 함께 거의하여 선봉장이 되어 충청,전라,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황간군(黃澗郡)에 사는 김진규(金辰奎)의 주선으로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무주,안의,장수 등지에서 활동하였고, 김동신이 체포된 1908년 6월 이후 8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성범(全聖範)과 함께 용담,금산,영동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경남 거창(居昌)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 끝에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체포된 후 순국하였다.
최성구는 1908년부터 1910년경까지 유종한의진에 투신하여 부대장(部隊長)으로 활동하면서 충북 이원(伊院)에서 일본인 2명을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최성구는 1910년 공주지방재판소(公州地方裁判所) 청주지청(淸州支廳)에서 소위 강도,살인,방화죄로 사형선고를 결석으로 받았었는데, 1913년 10월 3일 회덕군(懷德郡) 탄동면(炭洞面)에서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받고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6년 9월 2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新報(1913. 10. 8)
- 假出獄關係書類(경성형무소, 1926. 9. 28)
- 형사사건부(공주지방검찰청, 1913. 10.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