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7월 전남 지도군(智島郡) 일대에서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전북 고부군(古阜郡) 출신의 이성화 의병장은 1908년 초반 의병을 일으켜 1910년경까지 활동하였다. 고부를 비롯한 전라도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전북의 내륙 산간 지역에서 활동하는 신보현의진(申甫鉉義陣)과도 연합하여 일제 군경에 대항하였다.
1909년 7월 15일 이성화 등 의병 8명과 함께 전남 지도군 경화도(境火島) 상리(上里)에 이르러 주민들에게 "우리는 의병인바 군자금을 제공하라"고 요구하여 현금 40엔(円)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17일에도 이들은 지도군 위도면(蝟島面) 추념리(楸念里)에서 이장을 불러 "우리들은 의병으로서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온 것이니 현금 30엔을 제공하라"고 하며 현금 20엔을 징발하였다. 같은 날 위도면 추념리에서 약간 떨어진 태화황리(太和黃里)에서도 동장을 불러 같은 방법으로 현금 16엔을 모집하는 등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8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1년 10월 14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8. 25)
- 合葬簿(全州刑務所, 191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29, 63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