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제는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또한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통감정치를 강화하고 한국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항일의병운동이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최산두는 의병장 최성집(崔聖執)의 장자로 1908년 음력 3월 19일 오후 9시경에 김학림(金鶴林)·오두안(吳斗安)·오문석(吳文石)·정덕출(鄭德出)·서서촌(徐西村)·이물봉(李勿逢) 등과 함께 화승총 2자루와 칼 한 자루를 휴대하고 흥해군 신광면(神光面) 우어동(牛角洞)에 사는 이호동(李虎洞) 집으로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4월 16일 오후 8시경 김학림 등과 함께 천상리(川上里)에 거주하는 강오곡(姜奧谷) 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5월 28일 오후 9시경 다시 우어동 이호동 집으로 들어가 김학림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29일 밤에 죽동(竹洞)에 사는 이반오(李班吾)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6월 8일경에는 청하군 죽장면(竹長面) 감곡동(甘谷洞)과 다양동(夕陽洞) 동장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30일 대구지방재판소(大邱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도죄’로 종신징역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재판소:1908. 9. 3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43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