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부터 1908년까지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김선유의진(金善有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8월 1일 군대해산 이후 해산군인이 의병부대에 참여하면서 의병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해산군인들이 들어오면서 의병 항쟁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대표적인 의병장은 박화남(朴華南)ㆍ민긍호(閔肯鎬)ㆍ오정묵(吳正默)ㆍ김치영(金致永)ㆍ한상열(韓相說)ㆍ이강년(李康年) 등이었다. 김선유는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군대해산 이후 강원도 홍천(洪川), 경기도 가평(嘉平)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최봉래는 김선유의진에 참여하여 총기를 휴대하고 1907년 음력 11월 8일경 강원도 홍천군 고대리(高垈里), 같은 해 12월 23~24일경 경기도 가평군 도충내리(都忠內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1908년 음력 6월 16일경 의병 이정식(李正植) 외 7명과 함께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11월 14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 및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皇城新聞(1908. 10. 2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463~464면
- 梅泉野錄(黃玹, 1975) 卷之六 475면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 : 1908. 11. 14)
- 大韓每日申報(1908. 10.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