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07년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경상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러일전쟁 직후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면서 한국 식민지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거족적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언론과 교육부분에 의한 국민 계몽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의 의병투쟁이었다. 특히 의병투쟁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 같은 시기에 박응천은 국권의 위기상황을 절감하여 1907년 제천에서 재 거의한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여하여 좌종사(坐從事)로 활동하였다.
이강년 의진은 단양(丹陽)·제천(堤川)·원주(原州)·연풍·영월(寧越)·횡성(橫城)·강릉(江陵)·청풍(淸風)·충주(忠州)·문경(聞慶)·예천(醴泉)·영주(榮州)·봉화(奉化)·안동(安東) 등 3도 14군을 휩쓸며 적과 대적하였다. 특히 1907년 7월 5일의 제천 전투에서 500여 명의 적을 토멸하여 사기가 충천하였고 동년 9월 16일 제천 추치에서 대전하여 적 200여 명을 생포하였으며, 동년 9월 27일 죽령(竹嶺)에서 다시 적 200명을 생포하였다. 또 10월 5일 단양 고리평(故里平)에서 적 80명을 생포하였고, 10월 23일 충북 영춘(永春) 백자동(栢子洞) 전투에서 다시 적 100명을 생포하는 등 경상·강원·충청도 일대에서 강력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주범순은 위 백자동(栢子洞)에서 중군장(中軍將) 김상태(金尙台)의 지휘하에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던 중 불행히도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251·300面(雲崗先生倡義日錄)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7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