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조문갑은 영평(永平) 출신으로 1907년 9월부터 11월까지 경기도 연천군(漣川郡)과 영평군 일대에서 이홍응의진(李洪應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 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항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즉 동년 8월 해산 군인들의 의병 참여는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 계층도 유생,농민,포수,해산군인을 비롯하여 상인,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전면전의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경기도의 경우에도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 침략 세력과 그에 편승한 친일 주구배에 대한 공격으로 발전하였는데, 연천,영평,양주,철원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부대는 김수민(金秀敏),허위(許蔿),연기우(延基羽) 등이 주도하였다.
조문갑은 1907년 9월 21일부터 25일 사이에 이홍응의병진에 참여하여 경기도 연천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고, 동년 11월 20일부터 25일 사이에는 경기도 영평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12월 15일 경기도 양주헌병대(楊州憲兵隊) 영평분견소(永平分遣所)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던 중 탈출하였다가 다시 체포되어 1910년 11월 21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1910. 11. 2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1집 16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