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20년 3월 26일 전남 함평군(咸平郡) 함평공립보통학교의 졸업식날 함평시장(咸平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계획·주도하였다. 이곳의 만세시위는 조사현(曺士鉉)·송태호(宋太浩)·정기행(鄭琪行) 등에 의해 계획되었는데, 그들은 3월 26일 보통학교 졸업식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동지 규합을 분담하는 등 사전준비를 서둘렀다. 그는 3월 19일 보통학교 기숙사를 방문한 조사현 등을 만나 이 계획을 전해듣고서 동참을 결심하여 윤치영(尹致榮)과 함께 함평면 일원의 연락을 맡았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모순기(牟順基)의 집에서 태극기 수십 매를 만드는 등 준비 작업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 오후 4시경, 그는 졸업식을 마친 공립보통학교 학생 윤태완(尹泰完)·이행록(李行錄) 등 30여 명의 학생을 인솔하여 장이 열리고 있는 함평시장으로 행진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를 시위 행진하였다. 그러나 출동한 일본 헌병과 경찰의 무력 탄압으로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다수의 참가자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된 그는 1920년 5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1922년 9월부터 1925년 11월까지 함평군 손불면 동암리에 건립된 사설 신정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며 후학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20. 5. 26)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603면
- 三·一運動秘史(李炳憲, 1959) 2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