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기도 통진(通津) 사람이다.
김봉기(金鳳基) 의진에 참여하여 경기도 강화(江華)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07년 들어와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제한 뒤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말살시켜 갔다. 이에 김봉기 의병장은 군대해산 직후 이근풍(李根豊)·주창룡(朱昌龍) 등과 함께 경기도 광주(廣州)·용인(龍仁)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거의하고, 이천(利川)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조근봉은 이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도 강화 지방을 중심으로 대일 항전을 하였다. 특히 그는 1908년 8월 4일 강화도에서 일본군 헌병분견소 병사들과 교전하다가 붙잡혀 같은 해 8월 2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7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4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