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전성서는 정용대 의병장 휘하에서 중군장으로 활동하다 정용대 체포 이후 잔여 의병을 모아 의병부대를 다시 구성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16명의 의병을 이끌고 1909년 2월 18일 양주군 석적면(石積面) 항동(項洞)에서 양주 헌병분견소(憲兵分遣所) 헌병과 교전하였으며, 9월 17일에는 양주군 석적면 행동리(杏洞里) 부근에서 동료 의병 15명과 함께 군자금·군수품을 거두었다.
1910년에 들어서는 1월 29일 양주군 백석면(白石面) 홍복리(弘福里)에서 의병 63명을 이끌고 양주헌병분견소의 헌병과 교전하였고, 2월 17일에는 양주군 어등산면(於等山面) 중촌(中村)에서 의병 13명을 이끌고 일본 경찰과 교전하였다.
또한 전성서는 4월 14일 포천군 내정면(內正面) 신기리(新基里)에서 홍원유(洪元裕) 의병장과 함께 의병 36명을 이끌고 적성 헌병분견소 헌병들과 교전하였다. 4월 16일에는 강기동(姜基東) 의병장과 함께 양주군 천천면(泉川面) 돈계리(遯溪里)에서 결세징수를 위해 출장 나온 양주군 백석면장 심능설(沈能卨)을 위협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4월 29일에는 강기동 의병장과 의병 16명을 이끌고 유산리(酉山里) 헌병분견소 헌병들과 교전하였다. 이후에도 의병 8~9명과 함께 양주군 일대를 다니며 순사들과 교전하거나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의병항쟁을 이어갔다.
전성서는 경기도 일대에서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12년 9월 11일 포천군 서면 나뭇골(木洞里)에서 일본 헌병대와 교전 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폭도(暴徒)에 관한 편책(編冊)(경기경찰부장:1909. 12. 15)
- 폭도에 관한 편책(경기경찰부장:1910. 1. 15)
- 폭도에 관한 편책(경무국:1910. 2. 1)
- 통감부문서(統監府文書)(국사편찬위원회, 1999) 제6권 410면
- 매일신보(每日申報)(1912. 9. 1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제2권 532면, 제5권 151~152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국사편찬위원회, 1986) 제15권 394면, 402~403면, 660~661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8) 제17권 17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