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전봉기는 1907년 9월 30일 경기도 여주,음죽 등지에서 200여 명의 의병을 이끌었던 한성관의진(韓聖寬義陣)과 합세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뒤,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경기도의 경우에도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 침략 세력과 그에 편승한 친일 주구배에 대한 공격을 통해 응징이 전개되었다.
전봉기는 양반으로 농사에 종사하고 있던 중 1907년 9월 봉기하여 여주,음죽 등지에서 부하 200여 명을 이끌고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전봉기는 한성관의진과 합세하여 활동하였다. 한성관은 경기도 여주군 가서면(加西面) 소단리(所丹里) 출신이다. 원래 여주군 포수대장(砲手大將)으로 부하 50여 명을 인솔하고 지평(砥平),음죽(陰竹),양근(楊根),여주(驪州),죽산(竹山)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전봉기는 한성관의병 20여 명과 합세하여 1907년 9월 30일 여주읍을 공격하였다. 마침 여주읍에 머물고 있던 수비병(守備兵) 150여 명과 충돌하였으나 수적 열세로 패퇴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집 507~508면
- 暴徒史編輯資料(警務局, 1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