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유인석(柳麟錫) 의진에 가담하여 충북,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894년 일제는 청일전쟁을 계기로 동학농민군을 탄압하면서 한국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시켜 갔다. 그러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개입으로 말미암아 국제정세가 변화하면서 친일 세력이 약화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일제는 자국의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급기야 1895년 8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어서 일제는 친일 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침략에 양반 유생뿐만 아니라 민중들도 분연히 궐기하여 의병을 일으켜 대항하였다.
임을선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일제의 침략을 분개하던 중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유인석 의진에 참여하였다. 그는 비록 의병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지는 못하였지만, 의병장들이 항상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조역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즉 그는 당시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고 일어난 안승우(安承禹) 부대에 참여하여 우익장(右翼將) 윤성호(尹聖鎬)의 시종이 되어 그와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하였고 원주에서 그를 도와 군사를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 후 유인석 의병장은 여러 사람들의 권고에 따라 서북방면으로 북상하여 군사들을 모집하면서 장기항전을 하기로 하고 서북행길에 올랐다. 그리하여 1896년 6월 8일에는 음성방면을 지나 괴산 및 청주·공주 방면으로 이동하며 적을 격파하기도 하였으며, 6월 10일에는 강원도 원주에 도달하였고 영월·평창·정선·강릉을 지나 7월 11일에는 대화(大和)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름철에 장마비는 계속 내려서 길은 미끄럽고 군사들의 식량은 모자라는데, 몰려드는 적군은 사면에서 기승을 부리니 서북으로 가는 일도 용이한 것은 아니었다. 이 때 윤성호를 따라 정탐차 나갔던 그는 붙잡혀 지평(砥平) 상동(上東)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526·52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27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