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임성근은 1908년 1월 김율의진(金聿義陣)에 소속되어 전남 함평(咸平)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율은 전남 나주(羅州) 출신으로 1906년 10월 5일 형인 김태원(金泰元, 金準)과 함께 나주에서 봉기하여 1907 9월 기삼연(奇參衍)을 중심으로 결성된 연합의병진 호남창의맹소(湖南倡義盟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김율은 1907년 10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형 김태원과 함께 무장(茂長),법성포(法聖浦),고창(高敞),장성(長城)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1908년 1월 3일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함평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노획하여 무장을 강화하고, 그곳 사창(社倉)을 점령하여 저장되어 있던 양곡을 압수하여 군량미로 충당하였다. 같은 해 1월 22일에는 의병장 기삼연과 합동하여 4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함평(咸平)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2월 2일 의병장 기삼연이 체포되어 순국한 뒤, 그는 김태원과 함께 기삼연의진의 주력부대를 지휘하며 광주 일원 곳곳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을 공격하여 전과를 올렸다. 같은 해 3월 30일 김율은 광산군(光山郡) 송정읍(松汀邑)에서 체포되어 4월 25일 전사한 형 김태원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가는 도중 탈출을 기도하다가 일제에 의해 피살,순국하였다.
임성근은 1908년 음 1월 5일 김율의병부대에 들어가 1월 20일까지 김율을 비롯한 의병 100명과 함께 전남 함평,장성,영광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임성근은 1909년 3월 27일 대구공소원(大邱控所院)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1 700-701면
- 判決文(大邱公訴院:1908. 3.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