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임봉여는 전북 고부 출신으로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참여하였다. 1908년 음력 12월경 전북 태인·고부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성화의진은 1908년 3월 고부(高阜)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6월에는 정읍(井邑), 그리고 태인(泰仁)·순창(淳昌) 등지에서 군자금을 수습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군세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1909년 1월에는 6회, 2월에는 9회의 기습작전을 통해 일제기관을 공격하였다. 1909년 4월 이성화의진은 신보현의진(申保鉉義陣)과 합세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고, 5월 1일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5월 19일 고부군 벌말면(伐末面), 6월 20일 고부군 우덕면 등지에서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임봉여는 1908년 음력 12월 10일경부터 약 11일간 이성화의진에 참여하여 의병 15·6명과 함께 이성화의 지휘 아래 전북 태인·고부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0년 3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865~866면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1910. 3.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