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이창영은 1906년 음력 3월 20일 신돌석의진에 들어가 3월 27일 의병 집사가 되어 신돌석과 함께 75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영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28일에는 신돌석 및 의병 100명과 함께 영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29일 의병소모관이 된 후 30일 신돌석 및 120명의 군사와 함께 영양 사탄동(沙呑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4월 2일부터 6일 사이에 신돌석 및 150명의 의병과 함께 평해(平海)·울진·영양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7일 신돌석은 군사를 거느리고 청송(靑松)으로 이동하였고, 이창영은 8일부터 12일까지 영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3일 신돌석이 청송에서 돌아올 때 다시 합진하여 90명의 병력을 이루었다. 이창영은 9월 21일 영양 와구(瓦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7년 2월 21일 경상북도재판소(慶尙北道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교형(絞刑)을 받고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선고서(判決宣告書)(1907. 2. 5)
- 황성신문(皇城新聞)(1907. 2. 21, 3. 7)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1907. 2. 21)
- 대한제국관보(大韓帝國官報)(1907. 5.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419~42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