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1907년 이래 기삼연(奇參衍)의진, 박도경(朴道京)의진 등에 소속되어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1896년 전남 장성에서 거의한 바 있었던 기삼연은 1907년 광무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으로 국망의 사태가 심화되자 재차 거의하였다. 같은 해 9월 영광(靈光) 수연산 석수암에서 의기를 들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였던 것이다.
호남창의회맹소는 이후 무장(茂長)·법성포(法聖浦)·고창(高敞)·장성 등지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의세를 떨쳤다. 9월 23일 고창 문수암(文殊庵)에서 적과 교전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12월 7일 법성포 순사주재소를 기습 공격하여 주재소를 소각하고 군량을 수습하는 등 활동하였다.
이중백은 이와 같은 기삼연 의병장의 호남창의회맹소에 참여하여 종사(從事)의 직임을 맡아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08년 초 기삼연 의병장이 체포되어 순국하자 의진의 부장들은 각기 독자적으로 의진을 편성하여 활동하였는데, 이중백은 독자 거의한 박도경 의병장의 휘하에서 대일항전을 계속하였다. 호남창의회맹소의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한 박도경의진은 인근의 의진과 연합전선을 추진하여 군세의 확장과 효과적인 대일전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김영엽(金永燁)의진을 비롯하여 전해산의진 등과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효율적으로 항쟁하였다.
이중백은 박도경의진 소속의 100여 군사들과 함께 전북 고창 등지에서 군자금을 수합하는 등 활동하였다.
이어 1908년 8월에는 김여회(金汝會) 의병장의 의진에 소속되어 제4초(哨) 십장을 맡아 전남 장성, 전북 순창(淳昌) 등지에서 대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후 1909년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자 독자적으로 소규모의 의진을 편성하고 밀고자를 처단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이중백은 1910년 3월 5일 대구공소원에서 소위 폭동, 모살(謀殺) 등으로 교수형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4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었고 이해 5월 형 집행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統監府來案(奎章閣 所藏) 第1卷 1909∼1910年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19·890·891面
- 文鄕의 얼(長城文化院, 刊行年度 未詳) 70面
- 長城郡史(長城郡史編纂委員會, 1982) 306面
- 內閣告示(奎章閣 所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