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경북 영해(盈海)ㆍ울진(蔚珍) 등지에서 신돌석의진(申乭石義陣)에 참여하여 포군(砲軍)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3월 13일 영덕(盈德)에서 창의한 신돌석은 경북과 강원도 등 동해안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신돌석은 일월산(日月山)ㆍ백암산(白巖山)ㆍ대둔산(大遯山)ㆍ동대산(東大山)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군대해산 이후 구한국군의 합세로 군세를 크게 떨쳐 영양(英陽)ㆍ진보(眞寶)ㆍ청송(靑松)ㆍ경주(慶州)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8년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가 돌아온 후 평해(平海)ㆍ영양ㆍ울진ㆍ봉화(奉化)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이봉은 1908년 음력 3월 22일 신돌석이 의병 280명을 휘하에 거느리고 경북 영해군 오어면(烏於面) 희암동(喜岩洞)으로 들어오자, 의진에 들어가 포군이 되었다. 그 후 울진군 일원에서 활동하던 중 1908년 5월 1일 순사대와 교전하고 경북 영해ㆍ평해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3월 1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暴動) 및 모살보조죄(謀殺補助罪)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9. 3. 19)
- 刑事第一審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470~47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