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백남규(白南奎) 의진에 가담하여 충북 충주(忠州)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백남규는 충북 중원(中原) 출신으로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안동(安東) 진위대 부위(副尉)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과 그 부수각서에 따라 같은 해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을 당하였다. 이에 민족의 무력이 상실된 것을 통분해 하던 그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경북 순흥(順興)에서 거병한 뒤, 800여 명의 부하 의병들을 이끌고 경북·충북 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백남규 의진은 문경(聞慶)에서 거의한 이강년(李康秊) 의진과 합진하여 경북 일월산(日月山)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경북·충북·강원도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1908년 6월 이강년 의병장이 일본군에게 붙잡힌 뒤에도 백남규 의병장을 중심으로 대일 항전을 계속하였다.
이용운은 이같은 백남규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그는 1908년 5월 20일 백남규 의병장의 지휘 아래 다수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총검을 휴대하고, 충북 충주군 유등면(柳等面)에서 군자금 수합활동을 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 중 붙잡혀 태형(笞刑) 100도를 받았으며 이후에도 백남규 의진에서 종군하면서 의병활동을 계속하다가 붙잡혀 1909년 4월 5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5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374·37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