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제는 1907년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것을 구실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통감정치를 강화하는 등 한국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항일의병운동이 더욱 거세게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일어났다.
이영삼은 1909년 음력 7월 8일 박찬중의진에 들어가 의병활동에 참여하였다. 박찬중 의병장과 휘하 신봉민(申奉民) 외 11명의 의병은 11일까지 전라북도 김제·전주·함열(咸悅)·금구(金溝)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이영삼은 박찬중의 짐을 운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음력 7월 10일 금구군 낙양면(洛陽面) 애통리(愛通里) 주막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10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2월 25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1909. 9. 10)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합장부(合葬簿)(전주형무소, 191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3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