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전남 돌산 출신으로 1909년 음력 5월 황준성의병장(黃俊聖義兵將) 휘하에서
김성택(金聖澤) 등과 함께 전남 완도군 청산면(靑山面) 청산도(靑山島)와 여서도
(餘瑞島)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황준성은 전북 진안 사람인데, 1908년 1월 28일 소위 내란죄(內亂罪)로 유형
10년을 받고 전남 완도에 유배 중,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있다는 소식
을 듣고 탈출하였다. 그는 강성택(姜成宅) 의병장의 부하 수십 명과 함께 각각
총기로 무장하고 고금(古今)·청산(靑山)·여호(麗湖) 등의 여러 섬과 해남군 화
이면(花二面)의 각 부락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7월 완도군 북종면(北從面) 이
진리(梨津里)에서 추기엽(秋琪燁)·황두일(黃斗一) 등에 의해 의병장으로 추대되
었으며, 강성택과 추기엽 등을 부장으로 삼았다. 그는 일진회 회원 박원재(朴元
在)와 일본 헌병의 밀정 진태진(陳泰鎭)을 총살하였다. 또 대둔사(大屯寺)·미황
사(美黃寺)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본군 수비대의 야습을 받고 피신했다가 1909
년 12월 7일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이병현은 1909년 음력 5월 4일 김성택·황준성 등과 함께 청산도와 여서도 일
원에서 군자금을 수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10년 11월 12일 소위 강도죄(强盜罪)로 기소되어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
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11년 2월 25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
어 옥고를 치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木浦支廳:1910. 11. 1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별집 제1집 795~796면
- 刑事事件簿
- 判決文(光州地方法院木浦支廳:1911. 1. 24)·判決文(大邱控訴院:1911. 2.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