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유인석(柳麟錫) 의진에 가담하여 경상도와 충청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이범직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의 변보(變報)를 전해듣고 비분강개하였는데, 그해 11월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한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고 의병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원래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생으로 이필희(李弼熙)·주용규(朱庸奎)·서상렬(徐相烈)·신지수(申芝秀)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남과 호서지방에서 활약하다가 유인석(柳麟錫) 의진의 소모장(召募將)이 되었다. 이후 호서방면 소모장으로 나갔던 그는 제천의병이 충주를 입성하였다는 소식에 고무되어 1896년 2월 천안군수(天安郡守) 김병숙(金炳肅)을 처단하고, 선유사(宣諭使) 신기선(申箕善)을 잡아 가두었으나, 곧이어 정부에서 파견된 구완희(具完喜)가 이끄는 군사에 패하여 충주(忠州)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3월 27일 청주지방을 경유하여 10초(哨)의 군사를 거느리고 제천에 도착하였다. 이에 다라 제천의병이 본진에서는 후방대책으로 단양·청풍·원주·영월·평창·정선·지평 등지에 수성장(守城將)을 임명 배치하여 해당 읍성을 장악·관리하고 군사의 소모와 군수물자의 공급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 때 그는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강령(江寧) 지방의 파수를 담당하였다.
한편 그는 의병진의 운량감독(運糧監督)으로 활동하였고, 4월 12일에는 니문현(泥門峴)에 복병하였다가 일본군 4명을 처단하고 그 머리를 베어 바쳤다. 또한 5월 상순에는 한동직(韓東直)·심상희(沈相禧)와 함께 장호원(長湖院)의 적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후 유인석 의진은 중국의 원조를 받아 의병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을 가지고 서북행길에 올랐는데, 그 또한 압록강을 건너 요동(遼東)땅을 밟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청장(淸將) 왕무림(王茂林)의 압박이 혹심하여 1896년 9월 1일 참모관 권기수(權夔洙)와 함께 다시 강을 건너 나오다가 불행하게도 적군에 붙잡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29·42면
- 호서의병사적(이구영편역, 1993)
- 강계부관찰사 조승현보고서 제11호(1896. 9. 2)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2·17·31·36·60·161·166·191·202·358·359·390·391·407·417·422·440·446·459·463·50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176·203·26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2·51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0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