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기도 음죽(陰竹) 사람이다.
한봉서(韓鳳瑞) 의진에 가담하여 충북 청주(淸州)·진천(鎭川)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는 등 한국 식민지화 정책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축출하고,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를 처단함으로써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윤순채는 이같은 시기인 1909년 음력 1월 4일 한봉서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한봉서 의병장의 지휘아래 총기와 곤봉으로 무장하고 충북 청주·진천에서 군수금품 수합활동을 벌였다. 특히 그는 의병활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비상 수단으로 같은 해 음력 2월 25일 청주군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서 군자금을 징수하고, 같은 달 하순 북강외일면(北江外一面) 학소(鶴巢)이 친일 이장, 같은 달 진천군 가죽동(佳竹洞)의 친일 이장 등으로부터 군자금품을 징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10년 4월 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유형 10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143·14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