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1300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柳桂馨
이명 없음 성별 남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5 훈격 애족장
1908년 8월 조동규(趙東奎) 의병진(義兵陣)에 가담하여 소모관(召募官)으로 경북(慶北) 문경(聞慶), 예천(醴泉) 일대에서 의병활동(義兵活動)을 전개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조동규(趙東奎) 의진의 소모관(召募官)으로 경북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제는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나아가 고문정치를 실시하였다. 이어 1905년 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륵약」을 체결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한 뒤 곧바로 군대를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말살하였다. 이러한 국가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여 전국 각처에서는 의병이 속속 봉기하여 일본군을 축출하고, 친일주구배들을 처단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유계형은 이같은 시기에 반일 의병투쟁을 전개할 목적으로 1908년 8월 6일 조동규 의진에 투신하여 소모관으로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수십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경북 문경(聞慶)·예천군(醴泉郡)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10월 23일 경성재판소에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348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유계형 - 미상 -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건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유계형(관리번호:11300)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