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군대마저 강제로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의진이 조직되어 구국을 위해 일어났다. 당시 호남은 가장 치열했던 의병 투쟁 지역으로, 일제 기관 공격은 물론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통해 국권 회복에 노력했다.
오치규는 1909년경 정대홍 의진에 참여하여 음력 윤 2월 30일 전라북도 흥덕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획했다. 당시 동지 12명과 함께 총 10정을 휴대하고 난산시장에 있던 무명상점에서 주인에게 협조할 것을 강요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결국 총으로 위협 및 구타하여 엽전 50냥과 목면 및 당목(唐木) 500냥 정도를 가져왔다.
이와 같이 정대홍 의진의 동지들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부에서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 1909. 10. 1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56, 65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