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음력 9월 전북 무장(茂長)ㆍ고창군(高敞郡)에서 김참봉의진(金參奉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참봉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북 고창 출신의 김영진(金永鎭)으로 전해진다. 그의 본명은 재화(在華)로서 참봉을 제수받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1908년 후반 고창ㆍ부안군(扶安郡)을 비롯한 전북 서부 지역에서 수십 명의 의병을 지휘한 의병장이었다. 그를 따르는 의병들은 대부분 전북 서부 지역 출신의 가난한 농민들로 보이는데, 안화여 역시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1908년 음력 9월 의병 약 40명과 함께 전북 고창ㆍ무장군 내 마을을 왕래하며 의병 활동을 하였다. 일제가 호남 지역의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1909년 9~10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전개하자, 그 여파로 같은 해 11월 11일 무장분견소(茂長分遣所)에 자수하였다.
1909년 12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0년 8월 대사령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2. 8)
- 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15, 753, 754면
- 全北義兵史(全北鄕土文化硏究會, 1992) 下 562-56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