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1~2월 전북 고부(古阜)ㆍ정읍(井邑)ㆍ태인(泰仁)ㆍ김제군(金堤郡) 등지에서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병장 이성화는 전북 고부 출신으로, 원래는 신보현의진(申甫鉉義陣)의 중군장으로 활동하다 독립하여 전북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마저 해산되자 의병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뒤 신보현의진에서 중군장을 맡아 활동하다 독립하였다.
이성화의진은 1908년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냈는데, 1909년 초부터 적극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신보현의진과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일제 군경에 맞서 싸웠다.
이 무렵 신봉렬은 이성화의진에 참여하여 1909년 음력 1~2월 이성화 휘하 부하들과 함께 전북 고부군 우일면(雨日面)ㆍ우덕면(優德面)ㆍ벌말면(伐末面)ㆍ거마면(巨麻面)ㆍ궁동면(宮洞面) 등지의 이장(里長)이나 촌민들로부터 군수품을 조달하는 활동을 하다 1909년 중반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2년 9월 13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에 의거 같은 해 12월 24일 형 집행을 면제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7.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14~615면
- 전북의병사(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2) 하 527~52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