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군(日軍) : 일제 군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08년 5월부터 1909년 12월까지 순창·고부 등 전라남·북도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신보현은 50~100명 정도의 의병을 거느리고 활동한 의병장이었다. 신보현의진(申甫鉉義陣)은 독자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과 합세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성화의진은 1908년 3월 고부(高阜)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6월에는 정읍(井邑), 그리고 태인(泰仁)·고부(高阜)·순창(淳昌)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군세를 확장하였다. 1909년 1월에는 6회, 2월에는 9회에 걸쳐 기습 작전으로 일제기관을 공격하였다.
신보현의진은 1908년 5월부터 전북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일대에서 40~50명으로 편성된 의병부대로 활동하였는데, 동년 11월 26일 순창군 하치등면(下置等面) 내동(內洞)에서는 약 200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순창수비대 토벌대와 전투를 벌였다. 이 때 신보현의진은 이진사(李進士)와 정해석(鄭海石) 등의 의병장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약 150명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1909년 순창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보현의진은 동년 4월 5일 이성화의진과 합세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고, 5월 1일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5월 19일 고부군 벌말면(伐末面), 6월 7일 고부군 서부면(西部面), 6월 20일 고부군 우덕면 등지에서 일본 군경으로 구성된 토벌대와 전투를 벌였다. 1909년 11월 이후 신보현은 정읍·순창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이와 같이 신보현은 일본 군경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하다가 1909년 12월 23일 정읍군 동면(東面) 석계촌(石溪村)에서 체포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집 448~449, 662~665면
- 報告文件(1908. 10. 4·12. 1) 暴徒에 關한 編冊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537·618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14(國史編纂委員會) 義兵篇ⅶ 101, 626~627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17(國史編纂委員會) 義兵篇ⅹ 350~352면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343면
- 驥驪隨筆(宋相燾) 13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