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국호남의진은 1907년부터 1909년 사이에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전라북도 흥덕군(興德郡)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국호남은 1907년 전해산의진(全海山義陣)의 후군장(後軍將)으로 활동하다가 이후 약 200명 규모의 의진을 독립적으로 이끌고 활동하였다.
송성무는 국호남의진에 들어가 약 15명의 의병과 함께 총 9정을 휴대하고, 1909년 음력 3월 9일 전라북도 고부군 소정면(所井面) 대동(大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같은 달 13일 같은 면 광주동(光州洞)에서 군자금·군수품을 모집하였으며, 18일에는 고부군 서부면(西部面) 중리(中里)에서 군자금·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8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2년 9월 13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에 의거하여 형 집행을 면제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1910. 8.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2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