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음력 4월 경기도 죽산군(竹山郡)에서 정주원의진(鄭周源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경기도 죽산군 출신의 정주원은 1907년 8월 의병 30여 명을 이끌고 양지(陽智)ㆍ양성군(陽城郡)을 중심으로 15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9월 이후 죽산ㆍ양지군 등지에서 의병장 임옥여(任玉汝) 부대와 합진하여 9백여 명의 규모가 되자, 수원군(水原郡) 수하(水下) 방면과 안성(安城)ㆍ양지군 등지에서, 나머지 부대는 양지ㆍ죽산군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2월 죽산군 능촌(陵村)과 4월 양지군 사동(寺洞)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용인군(龍人郡) 요봉골(料鳳谷)에서 적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08년 7월 19일 체포되어 종신유형(終身流刑)을 받았다.
송교원은 정주원의진에 참여하여 1908년 음력 4월 2일 경기도 죽산군 서삼면(西三面) 풍정리(楓亭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같은 달 10일 서삼면 하가암(下加岩)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8월 30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29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09. 9. 29)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8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