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음력 2~3월경 전북 금산군(錦山郡)에서 문태수의진(文泰洙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경남 안의(安義) 출신의 문태수는 1906년 지리산(智異山)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북 무주(茂朱)에서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덕유산(德裕山)으로 가던 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여러 명을 사살하였다. 같은 해 9월 하순에는 전북 장수읍(長水邑)을 점령하고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30여 명을 사살하였다. 1907년 전북 무주 부남면(富南面)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적군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노획하였다. 문태수는 1907년 12월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편성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에 참여하여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다.
성진갑은 같은 마을의 조진봉(趙辰奉)과 함께 문태수의진에 참여하여 전북 금산ㆍ용담(龍潭) 등에서 활동을 벌였다. 1909년 2~3월경 전북 금산군 어재리(於在里)에서 동료 의병들과 함께 군자금 100냥을 모집하였으며, 1909년 3월 12일 조진봉 등 동료 의병들과 총을 휴대하고 금산군 수통동(水通洞)에서 길은좌(吉殷左)의 농우(農牛) 1두를 군수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6.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0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