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9월부터 전해산의진(全海山義陣)에서 활동하다가 1908년 9월 10일경부터 김영백의진(金永伯義陣)에 참여하여 전북 고창(高敞)ㆍ정읍(井邑)ㆍ흥덕(興德)ㆍ부안(扶安), 전남 장성(長城)ㆍ영광(靈光) 등지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전해산은 1907년 7월 29일 부하들의 추대로 의병장이 되어 영광ㆍ나주(羅州)ㆍ순창(淳昌)ㆍ담양(潭陽) 등지에서 활동을 전개하다 1909년 3월 의병진을 해산한 뒤 진안(鎭安)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김영백의진은 1907년 10월경 전남 장성에서 조직되어 정읍ㆍ부안ㆍ흥덕ㆍ고창ㆍ순창 등지에서 활동을 하였다. 1909년 9월부터 시작된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으로 호남 지역 의병에 대한 탄압이 강화됨에 따라 김영백은 휘하 의병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수하였다.
방순명은 김영백의진에서 의병 약 40명과 함께 총기 약 20정을 휴대하고 1908년 음력 9월 중 전남 흥덕군 일동면(一東面) 조동리(槽洞里), 1909년 7월 29일에는 흥덕군 일남면(一南面) 임리(林里)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고부경찰서 순사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9. 6)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5권 282, 28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8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