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제는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또한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통감정치를 강화하고 한국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항일의병운동이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1908년 음력 7월 24일 밤 박양운은 김경련의진에 들어가 휘하 의병 3명과 함께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산내면(山內面) 사신원리(使臣院里)에 거주하는 배사옥(裵士玉)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27일에는 전라북도 흥덕군(興德郡) 일서면(一西面) 백선동(白仙洞)에 사는 윤치선(尹致先)에게서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29일에는 서당리(書堂里)에 거주하는 김덕중(金德仲)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30일에는 김병동(金秉東)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음력 8월경에는 같은 군 이남면(二南面) 부응동(府應洞)에 거주하는 한훈도(韓訓導)에게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3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1909. 12. 3)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759~76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