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09년 덕유산(德裕山)에 근거를 둔 문태수의진(文
泰洙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문태수는 경남 안의(安義) 사람으로 1905년 11월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일으
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1906년 지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북 무주(茂州)에
서 의병 수 십 명을 이끌고 덕유산으로 가던 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여
러 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하순 전북 장수읍을 점령하고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적군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7년 문태수의진은 전북 무주 부남면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공격하여 적군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노획하는 등 큰 전공을 세
웠다. 1907년 12월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편성된 13도창의대진소(十
三道倡義大陣所)에 참여하여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다.
박성숙은 사격에 능한 인물로 문태수의진에 참여하여 전북 장수군 계북면(溪
北面) 문성동(文城洞) 뒤의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5일 밤부
터 박성숙은 고원중(高元仲)·원도숙(元道淑)·고명주(高明柱)·김준대(金俊大)·
신치수(辛致守)·안왈오(安曰五)·심우상(沈尤相)·조경화(趙京化)·하준태(河俊
太)·한청여(韓淸汝)·성문오(成文五)·성재홍(成在洪)·성준문(成俊文)·김경선
(金京先)·안원필(安元必)·박창선(朴昌先) 등 20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장수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박성숙은 1909년 9월 20일 체포되어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었다. 1909
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태형(笞刑) 10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361~362면
- 暴徒逮捕의 狀況(1909. 11. 9), 적괴 文太西에 대한 검거 계획에 관한 건(년도미상)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全州支部:1909. 10.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