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북 경성(鏡城) 사람이다. 일찍이 간도로 건너가 명동(明東)중학교를 졸업하고 와룡(臥龍)소학교 교사로서 재만한인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19년 3·1독립운동 후 윤준희(尹俊熙)·임국정(林國楨)·최이붕(崔以鵬) 등과 함께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당시 남만에 본거를 두고 있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입하였다.
1920년 1월 그는 윤준희(尹俊熙)·임국정(林國楨)·최이붕(崔以鵬) 등과 함께 조선은행 회령(會寧) 지점에서 용정(龍井)으로 운반 중인 현금 15만원을 화룡현 동양리(和龍縣東陽里)에서 호송 일경을 사살하고 탈취하였다.그는 동지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톡(海蔘威) 신한촌(新韓村)으로 들어가서 무기 구입, 무관학교 설립 등을 계획하였다. 1920년 12월 그는 일본 경찰의 주구인 엄인섭(嚴仁燮)의 밀고로 윤준희·임국정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에서 일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이 당시에는 일군이 소위 시베리아에 출병하고 있었던 때이므로 일본의 헌병이 노령(露領)에도 있었다. 그는 일본헌병대에서 모진 악형을 당하다가 청진(淸津)으로 압송되었으며, 청진지방법원과 경성복심법원을 거쳐 1921년 4월 4일 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동지 윤준희·임국정과 함께 교수형으로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17·47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621·624·627∼636·63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97∼300면
- 기려수필 307·30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