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충북 사람이다.
유인석(柳麟錫) 의진에 가담하여 충북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894년 일제는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동학농민군을 탄압하면서 한국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시켜 갔다. 그러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개입으로 말미암아 국제정세가 변화하면서 친일세력이 약화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일제는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급기야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어서 일제는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양반 유생 뿐만 아니라 민중들도 분연히 궐기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이 때의 의병은 유생이 주체가 되었으므로 그 사상적 배경도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이념으로 하고 존왕적(尊王的) 성격을 띠고 있었다.
민철훈은 원래 기개있는 선비로서 국모시해 이후 복수보형(復讐保形)하려 하였다. 그러던 중 1895년 을미개혁이 단행되자, 이듬해 1896년 초 유인석 의진에 합류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유인석 의진에서 여러 전투에 참가하다가 제천(堤川)에 회집하여 있었는데, 남한산성 의진을 함락시킨 참령(參領) 장기렴(張基 )의 관군들이 일본군과 함께 제천으로 이동하여 4월 23일 가흥(佳興)에 도착하였다. 이후 한달 동안 관군과 의병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던 중 5월 경 신지수(申芝秀)의 군사가 적진에 가까이 가서 불을 지르려 하다가 적군에 발각되어 퇴군하였다. 적군은 의진이 후퇴한 틈을 이용하여 의병에 조력한 사람들을 학살하였는데 이 때 그도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5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