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3월 전북 무장군(茂長群)에서 김참봉의진(金參奉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김참봉의 본명은 김준(金準)으로, 1906년 동생 김율(金聿)과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북 고창(高敞)ㆍ영광(靈光)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에는 기삼연(奇參衍)의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 선봉장이 되어 전남 나주(羅州)ㆍ함평(咸平)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1월 김율과 연합의진을 편성하여, 동복(同福) 무동산(舞童山)에서 요시다 기병부대 150명과 교전하고 요시다를 처단했다.
문홍순은 김참봉의진에 참여하여 1908년 음력 3월 10일 전북 무장군 청해면(靑海面) 송산리(松山里) 성치구(成致九)의 집에서 엽전 5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같은 해 3월 15일에는 상리면(上里面) 하라리(下羅里) 김택초(金澤初)의 집에서 엽전 30냥, 심원면(心元面) 궁산리(弓山里) 민참봉(閔參奉)의 집에서 엽전 5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1월 3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1. 3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22~82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