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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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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金千福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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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2015 훈격 건국포장
1907년 9월초 경기도(京畿道) 광주군(廣州郡)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 근위대병(近衛隊兵) 출신으로 김태선(金泰先)과 함께 거의(擧義)를 계획하다 체포(逮捕)되어 유형(流刑) 5년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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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해산군인으로 의병에 참여하려고 계획하다 체포되어 유형(流刑)을 받았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해산군인들은 군대해산조칙이 내려진 당일 서울의 시위대(侍衛隊) 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이며 대일항전을 개시하였다. 그 뒤 각 지방에서 잇달아 봉기한 해산군인들은 이후 각자 의병에 가담하여 의병항일전의 주축이 되었다.

김천복은 대한제국 근위대병으로 근무하다가 군대해산 뒤 1907년 8월 그믐경 수진궁동(壽進宮洞) 하숙에서 해산군인 김태선(金泰先)과 함께 남도(南道) 의병에 참여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해산군인 김영근(金永根)ㆍ박계문(朴桂文) 등과도 의병에 참여하기로 결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7년 11월 30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平理院 : 1907. 11. 3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340~341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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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천복 - 충청북도 청주(淸州) -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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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내란 유(流) 5년 평리원 1907-11-30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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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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