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 정부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1907년에는 헤이그특사 파견을 구실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또한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의 사법권·행정권 등을 장악하고 통감정치를 강화했다. 정부 주요 부서에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는 등 한국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1907년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항일의병운동이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이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김창욱은 정호갑의진에 참여했다. 1908년 10월 20일 정호갑 외 약 30명의 의병과 함께 총·칼을 휴대하고 영광군과 무장군의 상금촌(上金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2월 20일에도 정호갑 외 약 30명의 의병과 함께 무장군 장자산면(壯子山面)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84, 685면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1909. 7.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