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7월 전해산의진(全海山義陣)에 참여하여 전북 김제(金堤)ㆍ만경군(萬頃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전해산은 1908년 호남의 대표적 의진인 이석용(李錫庸)과 조경환(曺京煥)의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조경환의진이 일본군에 패한 뒤 의진의 추대로 의병장이 되어 전남 광주(光州)ㆍ장성군(長城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김찬경은 전해산의진에 들어가 1909년 음력 7월 12일 공사일(孔士一)ㆍ김광춘(金光春) 등과 함께 전북 김제군 서포면(西浦面) 원기리(院基里)의 민가에 들어가 "자신들은 전해산의 부하"라고 말하며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1909년 사이에 전라도 서부 지역에서 활동했지만, 이 시기에는 의진을 해산하고 전북 장수군(長水郡)에 잠복한 상태였다. 이들은 김명선의 집에서 당목 등을 징발한 후 그를 마승(麻繩)으로 묶어 납치해서 총기와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9~10월경 전라도 일대에서 벌어진 일제의 남한폭도대토벌작전 당시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909년 9월 20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전주형무소(全州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1월 21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9. 20)
- 合葬簿(全州刑務所, 191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35~63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