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0631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金贊京
이명 없음 성별 남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2016 훈격 애국장
1909년 음(陰) 7월 전북(全北) 김제군(金堤郡), 만경군(萬頃郡) 등지에서 전해산 의진(全海山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軍資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獄苦)를 치르던 중 순국(殉國)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7월 전해산의진(全海山義陣)에 참여하여 전북 김제(金堤)ㆍ만경군(萬頃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전해산은 1908년 호남의 대표적 의진인 이석용(李錫庸)과 조경환(曺京煥)의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조경환의진이 일본군에 패한 뒤 의진의 추대로 의병장이 되어 전남 광주(光州)ㆍ장성군(長城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김찬경은 전해산의진에 들어가 1909년 음력 7월 12일 공사일(孔士一)ㆍ김광춘(金光春) 등과 함께 전북 김제군 서포면(西浦面) 원기리(院基里)의 민가에 들어가 "자신들은 전해산의 부하"라고 말하며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1909년 사이에 전라도 서부 지역에서 활동했지만, 이 시기에는 의진을 해산하고 전북 장수군(長水郡)에 잠복한 상태였다. 이들은 김명선의 집에서 당목 등을 징발한 후 그를 마승(麻繩)으로 묶어 납치해서 총기와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9~10월경 전라도 일대에서 벌어진 일제의 남한폭도대토벌작전 당시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909년 9월 20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전주형무소(全州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1월 21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9. 20)
  • 合葬簿(全州刑務所, 191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35~636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찬경 - 전라북도 김제(金溝) -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강도 징역 10년 광주지방재판소전주지부 1909-09-20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건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김찬경(관리번호:10631)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