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경북 일대에서 유시연의진(柳時淵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유시연은 강원ㆍ경북ㆍ충북 일대에서 명성을 크게 떨치던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이 합류를 요청하는 격서를 보내자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삼척(三陟) 방면에서 이강년을 만났다. 그러나 당시 삼남토벌대장인 친일파 박두일(朴斗日:혹은 朴斗榮)의 계략으로 본진이 깨지자, 울진십이령(蔚珍十二嶺)에서 박두일을 사살하였다. 그 뒤 영양(英陽)ㆍ청송(靑松)ㆍ안동(安東)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과 교전하여 전과를 올리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김차준은 1907년 음력 10월경 유시연의진에 참여하여 20여 명의 의병과 함께 화승총 2정, 칼 1자루를 휴대하고 안동군 임북면(臨北面) 하정정동(下鼎井洞)과 상정정동(上鼎井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5월 6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9. 5. 6)
- 刑事第1審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492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0권 332, 33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