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본적은 미상이나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乃村面) 화성대(和成垈)에 거주하였다. 1907년 8월부터 1908년 6월까지 강원도 일대에서 한갑복부대(韓甲福部隊)·신봉학부대(申鳳學部隊)·김덕문부대(金德文部隊) 소속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7월 31일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뒤, 8월 6일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민긍호(閔肯鎬)가 봉기하였다. 특무정교 민긍호·정위 김덕제(金悳濟)·손재규(孫在奎)·한갑복(韓甲福) 등은 진위대원 250명을 4개 부대로 편성하여 원주읍의 우편소(郵便所)와 군아(郡衙), 그리고 경찰분서(警察分署)를 기습하고 원주를 장악하였다. 한갑복은 홍천(洪川)·인제(麟蹄) 일대에서 부하 수십 명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동년 12월 28일 횡성군 청룡면(靑龍面) 추동리(楸洞里)에서 부하 30여 명과 함께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다가 전사하였다.
김정희는 1907년 8월 5일부터 한갑복부대의 군관으로 홍천·인제 일원에서 군량미를 모집하였고, 동년 10월부터 신봉학부대(申鳳學部隊)에서 동료 20여 명과 함께 홍천·춘천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08년 음력 4월 14일부터 김덕문부대(金德文部隊) 소속으로 동료 40여 명과 함께 홍천·강릉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6월 20일경 체포된 김정희는 1910년 3월 17일 경성지방재판소 춘천지부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공소하여 동년 4월 17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권 247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編) 제1권 140·156·160·174~175면
- 判決文(京城控訴院:1910. 4. 27)
- 高宗時代史(國史編纂委員會) 제6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