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음력 3월 전북 순창군(淳昌郡)에서 김선여의진(金善汝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김선여는 1908년 4월부터 1909년 3월까지 신보현의진(申甫鉉義陣)의 좌익장ㆍ선봉장으로 활동하다 1909년 3월경 신보현의진에서 독립한 뒤 전북 순창군 백방산(柏芳山)에서 김재화ㆍ김응선(金應先) 등 40여 명의 의병들을 규합하여 의진을 편성하고, 의병장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경까지 총기 30여 정과 도검 3자루를 휴대한 4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북 순창과 전남 장성(長城)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다.
김재화는 1909년 음력 3월 1일 김선여의진에 참여하여 의병 40~50명과 함께 전북 순창 일원에서 화학 제조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8월 19일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하마치(下馬峙) 및 월성리(月城里)에서 동료 4명과 함께 고부경찰서 수색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9. 1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63~664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5권 486면
- 淳昌郡誌(淳昌郡, 1982) 17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