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남상목(南相穆)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충북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에 들어와 일제는 헤이그 특사사건을 기화로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인 군대까지 해산케 하였다. 이에 민족의 무력이 상실된 것을 통분해 하던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일제에 투쟁하든가, 아니면 기존의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일제에 항전함으로써 의병전쟁을 국민전쟁으로 발전시켜 갔다.
김재선 또한 대한제국 시위대(侍衛隊) 출신으로서 1907년 8월 1일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경기도 광주(廣州) 출신으로 용인(龍仁)군 용천곡(龍泉谷)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던 남상목 의진에 투신하였다. 김태동(金泰東)·송주상(宋柱祥)·김경화(金景化)·이시영(李時永) 등 동지들과 함께 남상목 의진에 참여한 그는 이 의진의 좌익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남상목 의병장의 지휘 아래 송주상·김태동·김경화·이시영·강춘선(姜春善) 등 동료 의병들과 함께 충북 음성(陰城)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였다. 그리고 경기도 죽산(竹山)에서 활동하고 있던 전봉규(全奉奎)·민병찬(閔丙贊) 의진과 합세하여 안성(安城)으로 진격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접전하였다. 이 안성전투에서 연합의진은 큰 승리를 거두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다. 그러나 의진간의 분규로 연합의진이 와해되자 그는 무장을 준비하여 재차 거의할 작정으로 상경하였다가 1908년 3월 붙잡혔다. 그리하여 1908년 7월 1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유형(流刑) 10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12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