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경남 안의군(安義郡) 황산면(黃山面)에서 문태수의진(文泰洙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경남 안의 출신인 문태수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1906년 지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북 무주(茂朱)에서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덕유산으로 가던 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여러 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하순 전북 장수읍(長水邑)을 점령하고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적군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7년 전북 무주 부남면(富南面)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적군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노획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1907년 12월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편성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에서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다.
김재문은 심낙선(沈洛先) 등과 함께 문태수의진에 들어가 1908년 2월 15일 밤에 수 명의 의병과 함께 경남 안의군 황산면에서 군자금으로 엽전 150냥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6.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0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