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7월부터 1909년 3월까지 전남 장성(長城), 전북 순창(淳昌)ㆍ정읍(井邑)에서 신보현의진(申甫鉉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신보현의진은 1908년 5월 전북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일대에서 의병 40~50명으로 편성되었는데, 같은 해 11월 26일에 순창군 하치등면(下置等面) 내동(內洞)에서 약 2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순창수비대 토벌대와 전투를 벌였다. 1909년 4월 5일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합세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고, 5월 1일 태인군(泰仁郡) 인곡면(仁谷面), 5월 19일 고부군(古阜郡) 벌말면(伐末面), 6월 7일 고부군 서부면(西部面), 6월 20일 고부군 우덕면(優德面) 등지에서 일본 군경으로 구성된 토벌대와 전투를 벌였다.
김재규는 1908년 7월 9일부터 1909년 3월 26일까지 신보현의진에 참여하여 의병 약 30명과 활동하였다. 1909년 9월 3일 전북 순창군 하치등면 피노리(避老里)에서 고부경찰서 소속 수색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0. 6)
- 暴徒에 關한건(1909. 9. 27) 暴徒에 關한 編冊
- 暴徒 討伐의 건(1909. 11. 9) 暴徒에 關한 編冊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8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