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음력 6월 전남 영광군(靈光郡)에서 김기순의진(金基順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김기순 의병장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1907년 10월 기삼연(奇參衍)이 결성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포대장(砲隊長)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2월 기삼연 의병장이 순국한 후에는 전해산의진(全海山義陣)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전남 영광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김응구는 1908년 음력 6월 14일 김기순 의병장을 비롯한 의병 십수 명과 함께 전남 영광군 성산리(城山里)의 민가에 들어가 "우리는 의병이니 군용금을 내라"고 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일제의 남한폭도대토벌작전으로 의병 활동이 크게 위축되자 1909년 11월 12일 전북 무장군(茂長郡) 순사주재소에 자수하였다.
1910년 1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같은 해 2월 17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1. 19)
- 合葬簿(全州刑務所, 191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839면

